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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스토리4

 

영국에 유학을 갈 때 내가 기대했던 것은

 

비틀즈와 레드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의 나라답게

 

충만한 아티스트의 열정과 성숙한 음악적 토대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영국은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브리티쉬 록의 땅이 아니었다.

 

 

물론 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도 활동하고 아마추어 록 밴드도 많지만,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라디오를 들어도 주로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로

 

최신 팝, 댄스 계열이고 록이나 재즈 같은 진지한 음악은 듣기 쉽지 않았다.

 

그 전에 살았던 캐나다 밴쿠버의 라디오에서

 

툭하면 핑크 플로이드나 지미 헨드릭스가 흘러나왔던 것에 비하면

 

 

무척 대조적인 모습이다

 

 

(밴쿠버 있었던 분들이라면 Classic ROCK 101 FM을 기억하실지도).

 

 

클럽 씬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한 블록에 하나씩 라이브 클럽이 성업하고 있을 거라는 환상은

 

 

사실 지나친 거였지만, 과거와 같은 활성화된 공연 문화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었다.

 

 

비록 라이브를 하는 펍(pub)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그리 흔하지는 않았고, 대부분의 펍은

 

 

우리나라 호프집이나 다를 바 없어서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번 행사로 공연을 벌일 뿐이다.

 

 

시내 중심가의 소호 같은 곳엘 나가도

 

 

우리나라 홍대의 라이브 씬보다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았다.

 

 

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인디 레이블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또 홍대 앞에서 개방적 클럽 연대라는 이름으로 라

 

 

이브 클럽 활성화 운동도 벌였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늘 예를 들었던 것은 바로 해외의 앞선 클럽 문화였다.

 

 

 

그러나 막상 여기 와서 보니 21세기의 런던에는 그런 문화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글타. 사회 전체의 인스턴트화의 물결에 편승한

 

대중음악의 상업화와 현실화는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진행되어 왔었던 거다.

 

 

우리와의 차이라면 이들은 찬란한 록의 황금기의 낭만을 가졌었다는 것과,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는 것 뿐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나이 30이 훌쩍 넘어 기타 유학까지 갔었을 때는

 

 

나름 기대했던 게 있기 마련이다.

 

물론 학교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게 평생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종의 예술 학교, 즉 호그와트스러운 전통적 매력과 함께

 

 

진지한 음악적 고민과 예술혼, 보헤미안적 낭만으로 가득 찬 영혼을 꿈꿨던

 

 

내게 학교의 지나친 현실적, 실용적 분위기는 사뭇 실망스런 것이었다.

 

 

어쩌면 클래식 음악 학교가 아닌 한 이런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인은 말 그대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형태로만 골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더하지만 해외의 현실도 다를 바 없어서,

 

 

창작곡 위주의 밴드로 성공하는 것은 실력과 무관하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역시 테크닉이나 음악적 표현 외에

 

 

밴드로 먹고 살수 있는 현실적 방법과 요령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다.

 

 

즉 일종의 직업 교육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있는 거다.

 

 

영국에서 이런 직업 밴드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결혼식이나 행사용 밴드를 하거나,

 

 

나이트 클럽 밴드가 되는 등의 길이 있다.

 

 

정말 잘하는 연주자들, 예컨대 우리 학교 선생들 같은 경우는

 

 

런던 중심가에 널려 있는 뮤지컬 극장 밴드의 연주자나

 

 

BBC 팝 오케스트라 등에 취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아티스트나 예술가가 아닌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악사를 양성하는 교육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4년 내내 해야 했던 것은 음악적 취향이나

 

 

지향과는 무관한, 좋건 싫건 상관없이 새로 주어지는 곡들을

 

 

1주일 안에 암기하고 연습해서 무대에 올리는 끝없는 워크샵 연주였다.

 

 

위에 열거한 각종 현실 연주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로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나 역시 이 코스를 끊임없이 따라가고 또 졸업장을 받았지만,

 

 

과정에서 내가 왜 이것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몰려드는 회의를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도 나름은 좋은 경험이고 앞으로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리고 선생들이 이런 코스를 만든 것은 음악계에서 창작 밴드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단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

 

 

또 시행 착오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도움을 줘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로서는 양심적인 행위일 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다 보면 자칫 주객이 전도되기 쉽다는 점이다.

 

 

차분한 현실성과 응용력 등 실용적인 부분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예술혼이나 자기만의 음악적 고집은 조금씩 도외시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가면 결국 학교라는 집단 전체가 좀 맥이 빠지고 열정과 목표 의식을 잃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학생들 역시 여기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기타 학교의 특성상, 다 늙어서 갔던 필자와는 달리 학생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설사 다소 황당하더라도 큰 꿈과 예술적 이상, 지향을 가질 수 있는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다 보면 이 젊은 친구들의 목표는

 

 

결국 악사에 가까운 것으로 점점 변해 가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히나 가장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는 크루즈 연주자 였다.

 

 

유럽 쪽에는 바다 위를 오랫동안 항해하면서

 

 

이 나라 저 도시 유명한 곳들을 돌아다니는 거대한 호화 유람선들이 많이 있다.

 

 

유명한 퀸 엘리자베스 2세 호도 바로 그런 배다.

 

 

이 배들에는 극장부터 수영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있으니

 

 

당연히 밴드도 있어야 한다. 식당에서 연주하고 밤에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도 하고,

 

 

각종 파티나 기념일 등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보수도 좋거니와

 

 

고급 유람선에 무료로 탑승해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을뿐더러,

 

 

숙식도 모두 공짜기 때문에 돈 들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내 꿈은 크루즈 연주자야라고 말하는

 

 

젊은 친구들도 공공연히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필자는 사실 속으로는 답답했다.

 

 

저런 일들 속에서는 자기 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언제든 주어진 곡, 혹은 청중이 원하는 곡만을 연주해야 하고,

 

 

그럴 의도와 능력을 통해서만이 그 일을 얻고 유지할 수 있는 거다.

 

 

이런 그들은 결국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페셔널 연주 직업인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저 일이 직업으로서 나쁜 것은 아니다.

 

 

또 어느 분야에서건 프로로서 자기 앞가림하고 먹고 사는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권장되어야 할 덕목일 뿐 결코 비난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아직은 조금 더 이상적이고 조금 더 꿈을 꿔도 되지 않을까.

 

 

음악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에

 

 

좀 더 강렬히 빠져들어도 무방한 것 아닌가.

 

 

사실 필자 역시 밴드 활동을 하고 음악계를 경험해 본 입장에서

 

 

티스트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결국 무슨 일이던 이렇게 먹고 사는 이야기로 넘어가면 거기에는

 

 

실타래같이 얽힌 관계들과 생존과 관련된 각자의 현실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도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자기 음악만 열심히 하면 결국은 그 보상이 올 거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런 건 만화에서나 성립되는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실력과 운, 타이밍 등이 다 절묘하게 맞아야 창작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 먹고 살 수 있고 이 중 일부 요소는 노력의 영역을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럼 반대로, 어떤 음악이던 음악을 하고 사는 것만도 복이니

 

 

실용적인 영역을 연마해 좋은 악사가 돼라?

 

 

이건 영국에서라면 성립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는 밴드 라이브 연주의 직업적 영역이 훨씬 더 좁다.

 

 

웨딩 밴드도 장례식 밴드도 나이트클럽 밴드도 크루즈 밴드도 없으니 말이다.

 

 

결국 울나라에서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페셔널 뮤지션은

 

 

극 소수의 세션맨 을 제외하면 대부분 룸싸롱 같은 업소 쪽이다.

 

 

이게 음악으로나 직업으로나 권장할 만한 일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럼 니는 어쩌고 있는데... 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열분들 다 보고 있다시피 나는 지금 이러고 있다.

 

 

글 쓰는 게 주업이고(사실 다른 직업도 하나 더 있다만)

 

 

연주는 진지한 취미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있다고 보면 맞을 거다.

 

 

머 이러다가 음반도 내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음악이 아니면 먹고 살 수 없다...

 

 

는 입장에 놓이는 것은 나이를 좀 먹은 내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때의 부담은 생계의 부담도 있지만,

 

그로 인해 음악 연주 자체가 편안함이 아닌 또 하나의 업무로 다가오는 것이

 

더욱 안내키는 부분이다. 반정부 하기도 피곤하고

 

 

여러 가지로 갑갑한 세상인데 그러다 보면 자칫 인생의

 

 

큰 낙을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머, 나 스스로도 이런 처지다 보니 열분들에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 글의 맥락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젊다면 일단 도전해 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필자 역시 20대 초 중반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 들었었다.

 

별다른 게 아니라 열심히 연습하고 밴드 결성하고

 

 

자기 음악을 만들어서 남들 앞에 공연이던 음반이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 놓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들 기타나 음악 연주를 그저 직업 중의 한가지로만 여긴다면

 

 

그 발전 역시 요원한 일일 수 밖에 없다. 현실도 중요하고 생업도 중요하지만,

 

 

음악은 아무래도 현실보다는 이상이나 낭만과 관련된 무엇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와 안전제일주의로 점철되어 가는

 

 

대중음악계와 음악교육계는 어쩌면 그런 음악의 본질

 

 

왜곡하고 음악계의 퇴락을 부채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힘들더라도 뚫고 나가야 하고, 창조적 열정으로

 

 

똘똘 뭉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법이다.

 

 

학교는 절대 학생들에게 너 자신을 기타의 신에 제물로 바쳐라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글은 네이버 실가모 [음악]신(新) 기타스토리 2에서  퍼온 글입니다